본문 바로가기

PROJECT/2017 미국레지던시

WEEK 4 미국레지던시 이야기

WEEK 4


Day 23 20173 13 월요일

작업을 했다. 하루가 빨리 지난다.

일기를 안쓰고 미뤘더니 기억이 안난다. ㅜㅜ

 

 

 

Day 24 20173 14 화요일

새벽부터 휴대폰에서 징징 소리가 난다. 번이나 난다. 6시에 , 7시에 . 알람도 안맞춰놓고 잤는데 알림 때문에 깨니 괜히 피곤하다. 그래서 밍기적거리다가 일어나니 9 30 넘었다. 차라리 알림 없이 잤다면 일찍 일어났을 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무슨 알람인가 자세히 보니 황색 경보. Ohio. Amber Alert이라고 적혀있다.

창밖에는 봄오는 소리가 무색하게 온통 하얀색이다. 눈의 세상이다. 봄이 오는 소리는 마음속에서만 들었나보다.

 

상황을 봐서는 어디 못나갈 같다. 눈이 계속 내리는데 바람때문에 옆으로 내린다.

 

카페 브로셔 디자인을 마무리 하니 하루가 금새 지나간다. 주연언니와 드류는 병원에 갔는데 건강검진을 위해서였다. 미국에서 결혼하고 영주권 받고 하려니 변호사도 고용하고 이것저것 필요한 서류를 비롯하여 돈도 많이 든다고 한다. 아니겠는가. 한국에서 결혼 때는 결혼식 비용과 온갖 예단과그런것에 비하면 아니겠지만,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내가 이렇게 같이 사는 것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월간도예에서 나를 담당하던 기자님이 갑자기 그만두시게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내가 연재하는 동안에 벌써 3명의 기자님들을 만나뵈었는데 정말 고마우신 분들이다. 항상 원고를 보내면 내가 생각하지 못한 실수와 보충 설명 등을 물어보시는데, 사실 내가 번에 ~! 하면 좋을텐데 항상 확인이 필요하다.

 

그래도 무사히 세라믹 프린트 시리즈를 끝내고 스스로 조금은 자랑스럽기도 하고 (토닥토닥) 앞으로 많이 읽고 준비해서 .. 알찬 글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도 한다. 시리즈를 기획은 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아직 1자도 못썼으니 생각엔 이러다가 연재 일이 훌쩍 와버릴 것만 같다.

 

홍콩에 있는 민정 언니와 카톡으로 잠시나마 이야기 있었는데, 고민이 많은 내게 언니가 논문 이야기를 다시 꺼내왔다. 맞다. 내가 논문 쓴다고 벌써 초안잡고 써놓다가 버려둔게 많은데, 지금 시간이 많을 논문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가 버려두지는 않으리 다짐을 했다. 민정 언니는 항상 좋은 친구이자 조언자로서 도움을 주시고, 언니랑 주고 받는 대화 속에서 나는 많은 도전을 하게 된다. 이런 친구가 옆에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그러다가…. 남들은 잘만 편찬?하던데 나는 아직 힘드네..하는 생각도 하다가 보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재미있는 도자기 이야기는 나한테만 재미있을 것이고, 아직 나는 어리고 시간이 많으니 준비를 천천히 한다면 언젠가 책을 있는 기회가 있을 있다는 생각도 했다. 때가 있을 것임에.

인생은 기다림이다.

 



 

Day 25 20173 15 수요일

8시가 안되어서 집에서 나왔다. 어제 하루종일 잠을 뒤척였다. 무릎이 잠자는 동안 아프기도하고 왠지모르게 뒤척였던 기억이 났다. 어제  Snacking 해서 그런가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오렌지 주스 한잔 먹고 바나나 한입 먹으니 안먹힌다. 바나나는 그냥 싸왔다.

 

월요일에 만든 뚜껑이 다행히 안말랐다. 화요일에 굽을 깎을 생각으로 살짝만 덮어두었는데 어제 학교에 못왔으니 살짝 걱정도 되었다. 스튜디오가 건조해서이다. 굽을 깍고 스프리그를 아침 내내 붙이니 목이 너무 아프다. 어깨도 계속 구부려 있어서

2 컴퓨터를 가지고 바로 맞은편 빌딩으로 갔다. 요가를 못갈 같은 날씨이지만 요새 하도 운동을 못하니 기를 쓰고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동생이 요구한 모든 카페 디자인과 블로그, 홈페이지 업뎃 등을 했다. 옛날에는 이런 것들이 엄청 스트레스 받더니 이제 경험이 쌓여서 브로셔 디자인 정도는 뚝딱. 현수막 뚝딱.

동생이 뭐뭐뭐 필요하다 하면 디자인해서 인쇄 보내고 프린트 것은 언니에게 토스하고 그런다.

 

다행히 영하의 온도였지만 눈는 안와서 요가를 갔다. 계속 빠질 작업들을 하고 있으니 요가가 정말 필요했다. 집에와서 바로 자버리고 하니 정말 운동도 못하고외국 집은 카펫이 깔려있다는 생각도 간과했다. 벌써 운동 제대로 안한지 1달이 되어가는데 상당히 걱정이다.

 

 

 

Day 26 20173 16 목요일

 

드류가 계속 아침에 미팅이 있다고 해서 따라나오느라고 아침 8시에 나온다. 괜히 하는 일도 없으면서 피곤하고 잠을 자고 싶다. 내일까지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고 토요일은 늦잠 자야겠다는 게으른 상상을 한다.

 

아침에 오자마자 어제 하던 작업을 했다. 2시간 하니 역시나 너무 힘들다. 눈도 피곤하고 어깨도 아프고 해서 중간에 그만 두었다. 이제 건조시키면서 계속 아기처럼 봐줘야한다.

 

유약실에 가보았는데 이미 만들어져있는 유약이 개된다. 중에서 10개정도 골라서 초벌해 놓은 조각에 칠하고 가마실에 옮겨놓았다. 어떤 식으로 나올지 무척궁금한데 우선 실험을 해보고 다시 실험을 하는 과정이 반복되어야 원하는 색이 나온다. 색에 대한 작업을 하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유약 실험에만 쏟고 싶지 않다. 어디를 가던지 원재료가 상당히 다르므로 내가 한국에 레서피들을 가지도 간다한들 도루묵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제는 조금씩 작업을 발전시키면서 다른 실험과 테스트도 해보고 싶다. 초반부터 너무 달렸네.



 

 

Day 27 20173 17 금요일

여기는 아는 사람도 없고 수도 없고 또한, 만남이라는 것이 너무 없어서 평화롭다. 진상손님들도 없고 서로 상처주는 일이 없지만 , 그래서 재미도 없기도 하다.

온지 한달이 되어가는데 (벌써;;) 이렇게 지루하다니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시골에는 차없이 하는 없이는 힘들 같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정도 남았는데

스케줄이 대충 잡히고는 있다. 렉쳐, 워크샵 그리고 레지던시 마무리의 전시까지 준비하려면 달이 결코 시간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보통 사회와 사람들의 이야기, 문화를 도자기를 통해 이야기하는 나는 여기서 완전히 다른 것을 만들 같다는 기분이다. 매일 느끼는 자연의 변화. 눈이 15cm 쌓인 . 공허. 고독. 애크론의 . 열심히 만들고는 있는데 역시 도예라는 것이 그렇게 빨리 만들어지지도 않거니와 계속되는 리서치와 실험으로 늦어진다.

과연 끝낼 수는 있을까.

 

전시를 Working-in-Progress형식으로 테스트한것, 이것저것 스케치 등부터 과정을 많이 보여주고 싶은데 아직 확정은 아니다.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하지도 않을 거고. 다만 무사히 가마를 떼어서 완성작을 만들어 한국에도 가져오고 여기 학교에도 하나 기부를 하고 보람된 시간으로 끝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그나저나 달동안 제대로된 운동을 못했는데 정말 홈트족은 아무리봐도 대단한 같다. 어떤 motivation 있길래 집에서 운동을 할까. 나는 운동 덕후인데도 불구하고 홈트레이닝은 성격에 맞는 같다. 집에서는 쉬는 거지 하고 싶지 않으니.

. 진짜 어떻게 하나. 고민이 된다.

 

사실 미국에 와서 너무 감사한 중에 하나가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이것저것 얽혀있는 생각들이 너무 많았는데 하나하나 사색의 시간을 통해  정리하고 있다.

 

중의 하나가 바로 운동을 제대로 배워보자는 것인데 지금 당장 뭐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천천히 40살이 되기 전에는 실천에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예전에 도자기 안하고 휴학했을 때가 있는데 휴학하고 호주에 있었다. 도자기를 평생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유학을 알아보았던 기억이 난다. RCA 검색을 통해 처음알았고, 당시만 해도 워낙 정보가 없어서 끙끙대었던 기억이 난다. 미지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

지금 나도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려는 것만 같다. 정보도 없고 정보 공유도 안되는 일이 있다. 영국의 웨지우드회사의 웨지우드는 모든 실험과 작업을 일지로 썼는데 그게 고스란히 남아있다. 나도  MPhil 하면서 Research Journal 기록하는 일을 습관이 되게 했다. 레지던시 기록이야기도 어쩌면 일환일 같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비슷하고 만들고 그리고 생각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요즘은 이러한 블로그 시스템도 있고 인터넷도 있어서 기록을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된다. 사실 아무도 블로그 들어와도 된다. 이것은 나의 기록이고 일기이니까.

이렇게 나는 오늘도 일기를 쓰며 수다를 떨고 스트레스도 푼다.

 

 

 

Day 28 20173 18 토요일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일어나자마자 주연 언니와 드류가 브런치를 먹으러 가자고 해서 쫄랑쫄랑 따라갔는데 세수만 급히하고 따라나섰던 차라 잠이 제대로 안깼다.

도착한 곳은 차로 5 거리에 있는 카페였는데 보기에도 오래되어 보이지만 로컬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라는 것을 있었다. 간만에 커피도 시키고 버섯과 스위스 치즈가 들어간 오믈렛, 사이드로 라이 브레드와 과일 팟이 나왔다. 집에서 방금 만든 같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맛이 있었다. 밥같은 느낌이랄까.

이름도 기억나지 않은 그곳에는 요리사 아저씨 1명과 서빙하시는 분이 3 정도 있었는데 서빙하시는 분들 중에는 약간 장애가 있으신 분도 있었는데 조금은 느린 서빙이었지만 정말 친절하셨다. 그런 모습을 보니 곳에 자주 오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안양에 있는 장애인복지관 친구들과 도자기, 베이킹 수업을 하고 있는데 (물론 베이킹 수업은 동생이 하고 옆에서 설겆이를 해준다) 처음에는 생각하지 못한 일들에 대해 당황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이러한 수업이 많았으면 하는 생각이고, 그들과 하는 시간이 너무 재미있고 행복하다.  조금씩 무엇인가 성취해 나가고 과정 안에서 또한 무엇인가를 발견해 나가는 것을 옆에서 보면, 내가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 사회적 기업이라는 오래된 단어를 들추어 내게 된다.

 

이곳은 주방장 아저씨가 모든 손님들의 음식을 순서대로 조리하고 빨리 빨리 주었는데 그것 또한 인상깊었다. 한국에서 없이 힘들게 카페를 돌보고 있는 동생 생각도 났다. 다음주에  미술관 케이터링 잡혀 있는데 있으려나 걱정도 되었다.

 

서빙하시는 분들은 커피 잔에 커피가 떨어지면 계속 채워주셨는데 커피가 원두커피인데도 너무 약해서 물같다. 주연언니랑 나는 계속 보리차라고 하고 드류가 말하길 자기는 아메리카노를 10,11 전에 처음 먹어봤다면서 아메리카노라고 해서 아메리칸 사람들이 많이 먹는 것은 아니라는 말도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하루종일 글도 쓰고 (글을 썼다기보다 끄적거렸다는 표현이 맞을 싶다) 리서치도 하고 엄마랑 카톡도 하고 나름 괜찮은? 오후를 보냈다.

방에서 유재환의  꽃같아 커피노래를 무한 반복해 놓고 음악을 들었다. 작년 봄에도 계속 들었는데 지금 들어도 노래가 너무 좋다.

 

저녁에는 영국에 있는 친구와 페북으로 동영상 통화를 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보는 친구라서 마음이 좋았다. 미국에 잠시 온다고 하니 나도 미국에 맘 놓고 이야기 사람이 생기는 구나 하면서 기분이 좋았다. 워낙에  모든 사람들이 한국에서도 영국에서도 바쁘니 정말 언제나 통화 버튼을 눌러서 통화를 있는 사람이 많이 없는 같다. 카톡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런 같다. 셀레임 때문인지 커피때문에 잠이 안온다.







Day 29 20173 19 일요일

어제 아침에 마신 커피때문에 잠이 안왔다. 늦게 잤다. 우리 가족은 카페인에 약하다. 엄마는 한모금도 커피는 절대 안드시고 아빠는 오후에는 절대 안드시고 아침에 믹스커피 잔을 드실때가 있다. , 내동생, 언니는 주로 아침에만 마시면 끝이다. 나는 오후 4 이후로 마셨다간 끝장이다. 물론 속에 먹어도 카페인때문에 심장이 떨린다. 영국 가기 전에는 커피도 못마셨는데 그곳에서 카페에서 알바하면서 커피를 배우기 시작했던 것이 계기다.

 

아침 10시에 교회에서 지난주에 처음 만난 은혜 가족들이 픽업하러 오셨다. 은혜 가족들은 중국계 한국인이셨다. 몰랐다. 사투리를 조금 쓰시나 했는데 중국 이야기를 하셔서 그런지 알았다. 그냥 별로 그런거 신경도 안쓰니깐 남의 프라이버시에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지도 않아서.

 사실 영국에서 한국에 다시 갔을 너무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었냐면 사람들이 사생활을 꼬치 꼬치 캐묻는 다는 . 어른이 물어보니 NON OF YOUR BUSINESS라고 하면서 대답안 수도 없지만, 세상은 무서운 곳이니 하나부터 열까지 대답하기도 싫다.

 

예배가 끝나고 성가대 연습하시는 은혜 가족분들을 기다리며 80살은 훨씬 넘으실 같은 우리 할머니 또래의 집사님과 단둘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분은 1988년도에 처음 오셔서 여기서 사신지 20년이 넘었다고 하셨다. 딸이 여기 살게 되었는데 영어도 못하고 초등학교 다니던 손주들을 돌보러 오셨다가 눌러 앉게 되셨다고 했다. 딸은 같이 교회를 안다니고 천주교 교회에 나가는데 그래서 다른 분이 항상 차로 모시고 온다고 했다. 요새는 인터넷으로 한국 TV 보지만 그동안은 그러지 못하셨을 같은데 영어도 못하고 운전도 못하니 그냥 감옥처럼 묶여 있는다고 하신다. 아이고. 우리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할머니가 오기 전에 내가 마지막 날에 서둘러서 떠났는데 현관문으로 머리를 빼꼼히 내밀며 내가 근처에 있어서 든든했다 . 정말이야라고 말씀하셨는데 모습이 아직도 생각나서 짠하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