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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TISH CERAMICS/파랑을 향하여

Blue 유럽 도자기 02_울트라마린

2013년에 방영된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에서는 조선 최초의 여성 사기장인 백파선의 파란만장한 삶이 그려진다. 물론 도예가들이 보았을 때 논픽션이라고 할 정도의 스토리라인도 종종 있었지만, 조선시대 배경답게 아름다운 그릇이 많이 나오고 도자기에 담긴 이야기가 한 가득 이었다. 시기적으로는 18~19세기때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졌지만 드라마 속에서도 청화백자를 감상할 수 있다. 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나타나는 용이 그려진 항아리는 왕실 전용 백자였으며, 궁중 화원을 시켜서 그림을 그릴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서 제작되었다. 왕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색. 그리고 중세 교회에서는 성모마리아의 색으로 사용된 파랑. 파랑의 삶은 과연 어떠했을까?


The Virgin of Humility by Fra Angelico (about 1430)


칸딘스키는 각 색깔은 각자 미스터리 한 삶을 산다 (Each color lives by its mysterious life.)’ 라고 하였다. 파란색은 어떠한 미스터리 한 삶을 살고 있을까? 잠시 파란색을 내는 안료의 삶을 들여다보자.


파란색 안료는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라는 신비한 돌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에서 베니스로 옮겨온 것이 서양에 파란색이 소개된 시초이다. 이것은 아주 밝은 파란색의 암석으로 대리석처럼 아주 단단하다. 이 암석을 깨뜨려 아주 고운 가루를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지금은 공장에서 기계로 모든 공정을 거치겠지만 당시 사람들은 암석에서 물감을 만드는 과정을 모두 손으로 했다. 1~2주가 모두 걸리는 작업이었다. 아시아에서 베니스로 올 때까지도 선박으로 몇 개월이 걸렸을 텐데, 만드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곱게 갈려진 가루는 비즈왁스와, 레진, 검 아라빅과 함께 섞은 후 물감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울트라마린 색이다. 당시에 이 색은 레볼루션과도 같았다. 자연에서 볼 수 없는 색을 처음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지 상상이 된다. 서양에 소개된 파란색은 아주 빠르게 소개된다. 서양 미술에 울트라마린 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지 장식을 위한 색은 아니었다.





1305, 르네상스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탈리아 페인터이자 건축가였던 지오토(Giotto, 1266~1337) 는 파두아(Padua) 지역에 있는 스쿠로베그니 성당(Scrovegni Chapel)에서 성경적 그림을 그려달는 부탁을 받았다. 37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져있는 그림에는 유다의 키스(The Kiss of Judas)’,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과 같은 유명한 성경의 일화도 그려져 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천장화이다. 울트라마린의 딥블루 색의 천장에는 화려한 금색의 별이 장식되어있다. 단순한 하늘과 우주의 모습이 아니다. 우리가 올려다 보는 것이 아니라 내려다 보고 있는 모습의 천국을 묘사해놓았다. 지오토에게 천국은 파랑으로 생각되었나 보다. 예술가의 파라다이스가 깊은 파랑으로 표현되었다. 700여년이 지난 이후에도 여전히 색을 잃지 않았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유토피아를 작품을 통해서 나타내는데, 지오토의 유토피아는 아직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도자기에서 밝은 색을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몇 날 며칠을 걸려 색을 도자기에 안료로 색을 칠했는데 가마에서 구워져 나오면 색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기술적으로 미숙했던 것이 있지만, 그 때 선배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바로 도자기에서 색 내는 것은 어려워라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의 유명한 도자기는 청자와 백자였다. 그 중 가장 화려하다고 말하는 상감청자도 청자유의 색을 빼면 검은색과 흰색의 장식이었다. 청화백자는 그림이 화려하고 파란색의 농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파랑이라는 한 가지 색으로 해석되었다.

 

우리나라 도자기의 역사에서 색이 화려하게 입혀진 도자기는 발견되지 않으니 도자기에서 색은 단조롭다고 스스로 위안 아닌 위안을 삼았었다. 그 편견은 오래되지 않아서 깨졌지만 말이다. 중국, 일본, 유럽의 자기는 정말 화려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도자기를 통해서도 빛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기술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도공들에게는 색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을까?

그 예는 250여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웨지우드 도자기의 창립자 조사이어 웨지우드 일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18세기 자스퍼(Jasper)라고 불리는 특별한 파란색을 내기 위해 무려 3000번이나 넘는 실험을 계속했다. 웨지우드의 이런 실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도자기의 발달은 조금 더디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정치, 사회 그리고 문화와 이토록 긴밀하게 결합된 색이 있을까. 로마인들에게 미개인의 색으로 인식되었던 파란색이 그 가치와 용도가 정해져 오직 성모마리아의 옷에서만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 성모마리아에 대한 숭배는 파란색의 인기와 연관 지어 중세 회화의 역사에서 시각적으로 묘사되었다. 파란색에서 더 나아가 성상파괴논쟁을 계기로 생겨난 색에 대한 논쟁은 색의 역사에서 중요한 대목이기도 하다.


다시 도자기로 돌아와서, 결론적으로 울트라마린 색을 현재 도자기에서 낼 수 있는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물론 구현할 수 있다. 파란색이 금값보다 비쌌던 시절에는 파란 머그컵 하나가 어마어마한 돈으로만 살 수 있을 테지만, 지금은 역사 속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파랑의 여정의 결과 우리가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런 역사적 바탕아래 도자기에서 파란색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앞으로의 여정은 파란색을 따라가면서 그 해답을 함께 찾아보도록 하자.

 

 

<참고>

http://jibridgland.blogspot.kr/

http://www.thisisitaly-panorama.com

The History of Blue, BBC documentary,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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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unaek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