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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TISH CERAMICS/영국 도자 디자이너

<영국도자디자이너> 로리 데이비스 Lowri Davies

<영국도자디자이너> 로리 데이비스 Lowri Davies




로리 데이비스(1978, 웨일스 도예가)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아직 런던의 공예 페어였던 오리진(origin)에서였다. 직접 디자이너를 만나서 이야기해 본 것은 아니었지만, 색상과 드로잉 때문이었을까. 그녀의 작품을 보면서 뭔가 모를 기억의 향수와 동시에 긍정적 에너지가 넘쳐나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후로도 그녀의 작업은 다양한 곳에서 다른 얼굴로 만날 수 있었다.


그녀를 개인적으로 직접 만난 것은 약 2년 전 일이다. 웨일스에서 열리던 전시를 통해 그녀와 연락이 닿았다. 웨일스의 수도인 카디프에서 나를 차로 픽업하러 온 데이브스는 거의 마지막 달의 산모였다. 그것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전시가 있던 박물관의 세세한 설명과 이 중에 현재 자신이 있는 파이어 웍스(fireworks) 스튜디오까지 데려가 주었다.


그녀의 작품이 웨일스의 유산과 자연환경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것을 안 것은 그로부터 멀지 않은 때였다. 웨일스에 다녀오니 그 자연유산과 아름다운 경치가 그녀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작품을 대하니 웨일스에서 도자 디자이너, 메이커로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작품에 투영되어 나타났다.


바실리 칸딘스키는 예술에 관해 이러한 말을 남겼다. ' 각 그림에는 예술가의 삶이 담겨있다. 두려움, 근심, 희망, 기쁨의 삶 전체이다. 이 삶은 어디로 가는 경향이 있는가? 능숙한 예술가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을 조화롭게 하는 것이 예술의 과제이다.' 


그녀와의 짧은 인터뷰를 싣는다.


< Interview>( 한국어로 의역한 부분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SK: 당신 작업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와 철학에 관해서 나누어주세요.

 

LD: 저는 주로 슬립캐스팅을 이용한 본차이나 테이블웨어를 만듭니다. 그릇 표면장식은 하나로 일체가 되어 드로잉을 하기 위한 하나의 캔버스로 작용합니다.

저의 드로잉은 웨일스의 유산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분명한 것 같지만 또 그렇게 분명한 것은 아닌 저의 작업은 사라져 가는 전통적 삶의 방식의 기록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할머니가 사셨던 방식으로 사는 것이 저에게 본보기가 됩니다. 할머니는 제가 16살 때 돌아가셨지만, 할머니의 물품이 몇 년간 누구도 손을 안 댄 채 남겨져 있는 할머니의 농장을 방문했던 시절이 기억납니다. 저는 할머니의 농장을 방문할 때마다 할머니의 유품들을 스케치하곤 했습니다. 언젠가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없어질 물건들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사셨던 삶의 방식은 신세대와 비교하여 전통적이었습니다. 텔레비전도 없었고, 오직 라디오 한 대와 도자기로 가득 찬 집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웨일스식 장식장은 청화백자(Blue and White Porcelain) 도자기가 놓여 있었고, 유리 장식장에는 티세트(tea set)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피겨린과 기념품들이 선반과 벽난로 위 선반을 가득 장식했습니다.

 

제가 어린아이였을 때는 휴가와 주말이면 할머니 농장에서 놀기도 하고 주방에서 할머니를 도우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많은 동화와 유령 이야기를 들었고, 성경 이야기를 암송하기도 했으며 피아노와 하프를 치기도 했습니다.

제가 만드는 테이블웨어는 이러한 기억과 이야기를 위한 캔버스입니다. 여기에 제가 보고 들은 것들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만드는 것은 할머니의 집에서 보았을 만한 도자기의 현대 버전입니다. 할머니의 농장 집은 지금 변했지만, 그곳에서 제가 모은 시각적 유산은 나에게 풍부하고 영향이 강한 분야이기때문에 더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정리하면, 저의 작업 철학은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는 도자기에 대한 가치와 나의 작업에서 이러한 유산, 기억, 소지품과 관련된 생각이 엉켜있습니다.

 

I produce bone china tableware using slip-casting techniques. The surface and decoration plays an integral part as the vessels act as blank canvases for my drawings. These drawings are heavily influenced by my heritage.

 

My practice – apparent and not so apparent - is very much about documenting a traditional way of life that is disappearing. For me, this is epitomised in the way my grandmother lived. Although she died when I was 16, I can still remember visiting her farmhouse, where her possessions had been left untouched for many years. During these visits, I would sketch her belongings – knowing full well that they would be cleared to make space some day.  Her way of life was very traditional compared to future generations. There was no television, only a radio and a house full of ceramics. Her Welsh Dresser beamed with blue and white plates; lustre jugs hung from beams; tea sets sat in glass cabinets, and figurines and souvenirs adorned shelves and mantelpieces.

 

 

As a child, I spent holidays and weekends there helping her in the kitchen and playing on the farm.  We heard stories of fairies and ghosts, and were encouraged to recite from the bible, play the piano and harp. Through using my tableware as canvases for these memories and stories, I am able to record what I’ve seen and heard. What I make are contemporary versions of these ceramics that could be seen in my grandmothers’ home. Even though her house has changed, the visual inheritance that I gathered from there is such a rich and potent territory for me and one that I am keen to explore further. So, in essence, my philosophy is entwined in the value we all have of ceramics and my practice seeks to extend on those notions of inheritance, memory and belonging through my own contemporary vision. 

 

 

SK: 주로 웨일스전통에 영감을 받아서 작품을 제작하는데 웨일스문화, 유산에 관해서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LD: 웨일스는 남, , 서쪽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여있습니다. 그러나 동쪽은 영국(England)에 맞닿아있습니다. (United Kingdom은 그레이트 브리튼 섬- 잉글랜드, 스코크랜드, 웨일스와 북 아일랜드로 이루어진 연합왕국입니다. – 글쓴이) 웨일즈는 네 개의 산, , 럭비와 노래가 유명합니다. 웨일스는 공식 언어로 영어와 웨일스 어(웰시) 두 가지를 씁니다. 웨일스 어는 전통적인 웨일스지방의 언어로 우리의 문화에 다양한 양상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특별히 웨일스식 홈(home), 민속 관습과 음악에 관심이 있습니다.  

 

때로 나의 작업에 전통복을 입고 검고 긴 모자를 쓴  웨일스여성이 등장합니다. (사진 3) 그녀는 19세기에 만들어진 기념품으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도 3 1일 세인트 데이비스 날(St. David’s Day)이면 웨일스전통 의상을 입고 후원자 성자 데이비드를 기념하였습니다.

 

2009년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나서 웨일스의 낭가루(Nantgarw)나 스완지(Swansea)와 같은 19세기 웨일스 포셀린 공장에 대한 연구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낭가루 포셀린은 단지 짧은 시기 동안에만 생산된 도자기 회사입니다. 표면 장식도 정말 아름다워서 개인적으로 여기에 사용된 새, , 동물의 디자인을 이용해 컨템프러리 버전을 만들고 싶기도 했습니다. 저의 작업에서 러스터를 사용하고, 본차이나 디자인의 색 또한 낭가루 웨어의 색 팔레트에서 반영했습니다.

 

최근의 리서치 프로젝트에서 저는 가족의 음악적 유산에 대해 집중했습니다. 특별히 포크 가수로 유명했던 현조부가 있습니다. ‘Eos Mawddwy’ (The nightingale of Mawddwy)는 하프 연주와 함께 하는 노래로 유명했는데 가족들 역시 합창단원으로 노래를 불렀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노래와 춤을 추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플리게인(Plygain)이라 불리는 캐롤( 크리스마스 때 자정에서 이른 아침에 부르는 캐롤으로 모든 지역 교회 가족들이 다가오는 한 해를 기원하면서 노래 부르는 웨일스의 전통)을 교회에서 불렀습니다. 이것은 촛불을 들고 어둠 속에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저는 플리게인 서비스에 관해 웨일스 민속 박물관의 아카이브에서 찾은 자료를 바탕으로 종이로 장식된 19세기 캔들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Wales is surrounded by sea to the North, South and West, but borders England to the East.  We’re known to most for our mountains, castles, rugby and song.  We have two official languages – Welsh and English – Welsh being the indigenous language of Wales. There are many facets to our culture, but I’m particularly interested in the traditional Welsh home, our folk customs and music.

 

The Welsh lady, dressed in traditional Welsh costume, with her tall black hat often appears in my work. She’s a motif created in the 19th century and appears on souvenirs. As a little girl, I dressed up in Welsh costume on March the 1st, St. David’s Day, in celebration of our patron Saint.

 

Since my MA in 2009, I have been interested in looking at Welsh 19th century porcelain companies, such as Nantgarw and Swansea. Nantgarw porcelain is very fine and was only produced for a very short period of time.  The surface-decoration is beautiful and I’ve attempted to create my own contemporary versions mirroring their use of birds, flora and fauna as decoration.  The colour palette in my bone china collections also reflect Nantgarw-ware, as does the addition of lustre.

 

During a recent research project, I focused on my family’s musical heritage - in particular my great, great, great grandfather who was a successful folk singer. ‘Eos Mawddwy’ (The nightingale of Mawddwy) was known for singing accompanied by the harp, but the family also sang as a choir, traveling from pillar to post to sing, dance and entertain.  They also sang in church services called the ‘Plygain’ - a carol singing service held around Christmas time, typically between midnight and the early hours of the morning where all the families of the Parish would contribute to mark the coming of the new year. These were typically held in the dark with only candlelight for lighting. I’ve since created versions of some paper-decorated 19th century candlesticks, which I found in the archives of our folk museum for the ‘Plygain' service.

 

SK: 다음으로 웨일스의 전통, 유산, 할머니의 기억들이 모두 시각화되어 표현된 도자기를 기술적으로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합니다.

 

LD: 저는 도자기 홈웨어를 만들고 그것에서 나는 수입을 가지고 생활을 합니다. 우선 종이에 그릇을 디자인하고 성형 기계에서 형태를 만듭니다. 형태를 만든 후에 석고 몰드도 만듭니다. 석고몰드가 다 마르면 본차이나 슬립을 이용해 캐스팅을 합니다. 형태를 합치기 전, 제가 만드는 대부분의 그릇은 3mm 두께가 됩니다. 몰드에서 빼낸 부분들을 합치고 정리해서 1,240도에서 초벌을 합니다. 작품이 가마 안에서 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세터(setter)라는 것을 사용하는데 그 위에 뒤집어서 기물을 소성합니다. 높은 초벌 온도 때문에 기물은 초벌 이후에 유리화됩니다. , 기물이 뜨거울 때 시유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1120도에서 투명유를 시유 해서 먼저 굽고 그 이후에 노랑, 초록, 핑크, 회색, 파란색, 오렌지 등의 색유를 입혀 1,120도에서 다시 한 번 소성합니다. 

 

드로잉과 일러스트레이션은 저의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로  종이 위에 잉크로 그림을 그리고 수채화 물감을 이용하여 색칠합니다. 그 다음에 일러스트레이션 전사지 (실크스크린 혹은 디지털 방식으로 만든 것)을 입히고 920도에서 다시 소성합니다. 5번째 혹, 마지막 과정은 금이나 플래티늄 러스터로 장식해서 720도에서 다시 한번 소성하는 것입니다.

 

I make a living from creating domestic-ware. The work begins from designing the vessel on paper, before turning the shapes in plaster on a lathe and then creating plaster-moulds of them ready for casting.  Once dry, I then cast using bone china.  I typically cast the pieces to 3mm in thickness, before assembling any handles or spouts. Pieces are fettled and cleaned before bisque firing the work to 1240°C. To avoid any movement in the pieces during the firing, most of the work are faced lip-downwards on setters, made of kiln refractory material.  

 

Due to the high bisque temperature, the work is vitrified after bisque. This means that glaze is applied when the pieces are hot. I initially apply a clear glaze and fire the work to 1120°C, before applying coloured glazes – typically yellow, green, pink, blue, orange or grey - then the work is fired once more to 1120°C. 

 

Drawing and illustration play a very important role in my work. I mainly draw on paper with ink and paint with watercolour. To decorate the ceramic ware, I apply transfers from my illustrations - a combination of digital transfers (printed from my watercolour drawings) and single-colour screen-printed transfers – which are fired to 920°C. The fifth and final process is applying gold or platinum lustre to the work which are fired to 720°C. 

 

 

SK: 디자이너 메이커로서 모든 작업을 혼자 하시는 것 같습니다. 모든 작업의 과정을 스스로 컨트롤하는 이유가 있나요?

 

LD:  각각의 모든 만들기 스텝을 직접 컨트롤하는 것은 저에게 중요합니다. 만드는 과정 중에 공장에서 사용하는 산업적인 과정을 빌리지만 작은 양을 만들고 모든 작품은 제 손으로 만듭니다. 이와 연관되어, 할머니가 가지고 계셨던 대부분 도자기도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프로세스를 제 스튜디오에 가져오려고 합니다. 많은 영국 도자기가 만들어지는 도자기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스톡--트렌트 지방에서 석사 공부를 한 것도 이러한 프로세스를 빌린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It’s important for me that my hands are in control of every step of the making. I deliberately use industrial processes, but on a very small scale and all by hand.  Inevitably, it’s the same process that were used to make the majority of my grandmothers’ ceramics though I am trying to replicate those processes from the comfort of my own studio. Gaining my MA in Stoke-on-Trent, the heart of the UK potteries - was also important to me, as this is where most of the Ceramics and vessels were made.

 

SK: 도메스틱 웨어(홈웨어)가 주를 이루는 당신의 작업에서기능적인 면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나요? 이 점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주세요.

 

LD: 할머니의 집을 가득 채웠던 도메스틱 웨어는 저에게 도자기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부분입니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유산을 물려받으신 후 여전히 그 도자기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할머니의 티세트는 매일 사용하는 용도, 방문객용, 중요한 날에 사용하는 용도로 따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집은 기념품, 피겨린 등 내 작업에 등장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질문과 같이 제 작업에 기능(utility)의 형태를 지고 있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의 작업은 기능적이면서 장식적인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합니다.

 

Domestic-ware is what attracted me to Ceramics, as my grandmother’s home was full of it. My mother has since inherited her collections. My grandmother had a tea set for the ‘everyday', a tea set for visitors, and a tea-set for important occasions. Her home was also full of souvenirs and figurines, elements that have also appeared in my work. It’s also important to me that the work has a form of utility also – so that it has a dual purpose, of being decorative and functional.

 

SK: 앞으로 예정된 프로젝트나 계획을 알고 싶습니다.

 

LD: 계속해서 반투명한 퀄리티를 가지고 있는 본차이나와 표면 디자인에 집중된 다양한 프로젝트를 할 예정입니다.  얼마 전 카디프 국립 미술관에서 했던 ‘Fragile?’이란 전시에서 투명 조각 자기(Lithophane)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이것은 정말 얇은 패널의 본차이나로 조각된 석고판에 캐스팅한 것입니다. 전 이 테크닉을 라트비아에서 2013년에 배웠습니다. 저는 이 프로세스를 다양한 이유에서 좋아하는데, 대부분은 본차이나의 아름다움과 투광성을 2D 표면을 통해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루틴 크래프트 센터(Ruthin Craft Centre)에서 ‘W is for Wallpaper’라는 이름의 월페이퍼 디자인 전시를 하였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 월페이퍼 작업이었는데 이 작업을 조금 더 발전시켜서 앞으로 도자 작업과 함께 연결시키고 싶습니다.

 

저는 제가 원하는 작업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운이 좋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작업을 발전시키는 것은 제가 일하는 방식의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내년에는 새로운 테크닉과 함께 테이블웨어 생산에 관해 깊이 있게 연구할 것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스스로 넘도록 노력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I am continuing different projects that focus on the translucent qualities of bone china and another focusing on surface design.

 

I was commissioned to be part of the ‘Fragile?’ exhibition at the National Museum in Cardiff where I exhibited a collection of Lithophanes. Lithophanes are thin, artificially lit, panels of bone china that have been cast on carved plaster bats, a technique that I was taught during a course in Latvia in 2013.  I enjoy the process for many reasons, but most importantly the raised 2D surface promotes the translucency and beauty of bone china.

 

I’ve also recently completed a wallpaper design for an exhibition at Ruthin Craft Centre ‘W is for Wallpaper’. This is the second time that I’ve created wallpaper, and I’d like to develop it further by incorporating ceramic fragments to them.

 

I feel very fortunate to be able to do what I do, but being able to experiment and develop my work is integral to my way of working. Both of these new techniques will be looked at in more depth in the next year, alongside the tableware manufacture. I look forward to pushing their boundaries som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