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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TISH CERAMICS/유럽 도자기 공장 & 박물관

영국 벌리 공장의 청화 via 월간도예

 벌리 (Burleigh)


웨지우드(Wedgwood), 포트메리온(Portmerion), 앤슬리(Ansley), 벌리(Burleigh), 처칠 차이나(Churchill China), 로얄 덜튼(Royal Doulton). 홈쇼핑과 인터넷에서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한국에 공식 매장이 없어서 잘 몰랐던 그 브랜드 이름들. 모두 영국 도자기 상표 이름입니다. 많은 사람이 가지고 싶어하는 영국 도자기 브랜드의 공장들을 직접 둘러보면서, 산업 도자기의 나라 영국의 도자기 공장들과 박물관을 시리즈로 소개해 보고 역사도 알아보는 기획을 하였습니다.



영국 도자기 공장들을 소개하기 전에 도자기 공장들이 모여 있는 지역을 먼저 탐방해 봅시다. 영국에도 우리나라로 치면 이천, 여주, 광주에 해당하는 지방인 스태퍼드셔 (Staffordshire)가 영국 북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안에 작은 행정구인 스톡 온 트렌트 (Stoke-on-Trent)는 전통적으로 영국 도자기 제조업의 중심이었습니다. 현재에도 그 명성에 맞게 시내에는 포터리스 뮤지엄(The Potteries Museum)이 있어서 그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유명한 도자기 회사가 매일 가마에 도자기 그릇을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스태퍼드셔 (North Staffordshire) 북쪽 지방은 13세기부터  석탄생산의 중심지였고, 18세기부터는 스톡 온 트렌트에 있는 트렌트 앤드 머시 운하( Trent and Mersey Canal) 운하로 고령토(China Clay)를 콘월(Cornwall)지방에서 운반하기도 하고 다 만들어진 제품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물, 흙 그리고 불을 때는 원료가 풍부한 이곳은 도자기를 만들어 구울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다 갖추어 있게 됩니다. 17세기 이전부터도 스톡 온 트렌트에서 도자기가 구워 지고 있었지만, 영국 도자기가 세계의 중심이 된 것은 웨지우드 창립 (1730) 이후입니다. 1800년에는 이미 스톡 온 트렌트는 영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산업 도자기의 센터였습니다.[1] 영국의 도자기 생산 기술이 최고조에 이르고 철도가 생겨났을 때 세워진 곳이 바로 벌리(Burleigh) 공장입니다. 영어 스펠링만 봐서는 이름도 발음하기 어려운 이 영국 도자기 회사는 1851년 버글레스 앤 레이(Burgess & Leigh)에서 부터 출발하였습니다. 시작은 다른 회사들보다 늦었을지 모르지만 지금도 남아 있는 영국 공장 가운데에서도 전통적인 방법을 유지하면서 도자기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벌리도자기는 지금까지도 이 조그만 공장에서 자동화가 아닌 사람들이 손으로 전통적인 기법에 따라 제작합니다. 먼저 형태는 기물에 따라 슬립 캐스팅이나 지거앤 졸리 (Jigger and Jolley) 기계를 써서 모양을 만듭니다. 이 기계는 물레와 대량화된 기계 사이에서 작은 워크숍 같은 곳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한 기계입니다.

사진과 같이 형태가 잡힌 석고 틀을 기계에 장착하고 성형을 한 후 초벌을 하고 나면 그다음에 벌리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장식이 입혀 집니다. 지금은 많은 전 세계의 공장이 리소그라피(Lithography) 전사지를 사용하여 유약위에 전사지를 붙이고 낮은 온도에서 굽는 상회 전사(On-glaze) 기법을 사용합니다. 반면에 벌리는 아직 하회 전사 (Under-glaze)기법을 사용합니다. 벌리의 이 전통적인 기법은 영국이 처음에 전사 (Transfer) 18세기에 발명했을 때 사용하던 기법입니다. 바로 초벌이 된 기물에 얇은 종이(Pottery tissue)에 패턴 장식을 붙여서 소성하는 기법입니다. 인쇄 방법은 전통적으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벌리에서는 그 장식이 새겨진 원통모양의 동판을 돌려서 만듭니다.[2]  초벌된 기물에 장식이 새겨진 종이를 가지고 비누와 물만을 사용하여 일일이 장식을 두드려 붙입니다. [3] 그 후에 동판에 인쇄할 때 사용하였던 기름을 날려 버리기 위해서 저온으로 다시 한 번 굽습니다. 그러고 나서 시유를 해서 마지막 소성을 합니다.

이러한 전통방식을 고수해온 까닭에 벌리의 청색 꽃문양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회 전사이기 때문에 우선 파란색의 풍부한 색감을 내는 코발트를 사용할 수 있고 유약이 가마에서 열에 의해 녹을 때 그 무늬와 같이 합쳐지기 때문에 이러한 깊은 느낌을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전사지 (Transfer Printing)의 발명은 영국에서 1751년에 시작이 되었습니다. [4] 처음에는 원하는 그림을 동판화가(engraver) 들이 판에 새겨서 찍었습니다. 벌리처럼 도기(Earthenware)에 파란색의 하회 전사 (Under-glaze blue)17세기 후반에 시작된 중국 그릇의 유행에 따른 것입니다. 그 유행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차이나 마니아 (China Mania)’라고 불릴 정도였습니다.[5] 당시 영국 사람들은 특별히 파란색과 하얀색의 조합에 열광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영국이 도자기를 수입했던 중국 청화백자와 관계가 있습니다. 당시 중국 도자기는 단지 돈 많은 사람들의 사치품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같이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비행기로 배달되는 시대가 아니라 중국에 주문하고 몇 달을 기다려 배로 받는 식이었으니까요. 중간에 배가 침몰하기라도 한다면 내가 주문한 도자기는 깜깜무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만큼 가격도 비쌌습니다. 18세기 이후에 사회가 바뀌고 경제 발전 후에 영국의 중산층 가족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동안 보아왔지만, 재력이 없어서 추구하지 못했던 상류층 문화를 동경합니다. 하지만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부족합니다. 이때 산업화에 일찍이 눈을 뜬 영국은 대량 생산을 쉽게 할 수 있는 전사지를 발명합니다. 중국의 청화백자가 일일이 도공들이 손으로 그린 것과 비슷한 제품을 빠른 시간에 값싼 가격으로 수요를 따르기 위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중국 도자기보다 덜 비싼 대용품이 바로 파란색 전사지로 장식된 이러한 도기 제품(Blue-printed Earthenware)이었습니다. 도기 또한 백자 보다는 낮은 온도에서 구워지므로 생산 가격을 낮출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문을 닫은 스포드 공장(Spode)의 창립자인 조시아 스포드 (Josiah Spode)가 처음 이러한 제품을 만들었던 장본인이었습니다. 이러한 열기는 19세기까지 이어졌고 그중에 벌리도 있었던 것입니다. 18세기, 처음에는 중국의 청화를 모방하려 하였지만 영국다움이 더해져서 이러한 벌리의 아름답고 깊은 장식이 탄생하였습니다. 19세기 때는 청색 뿐만 아니라 점차 다른색도 나타나는데 크롬, 분홍, 갈색, 그레이(Payne's grey) 등의 색도 유행해서 벌리또한 이러한 색으로 장식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색은 지금까지도 벌리의 도자기 제품에 다양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벌리 공장은 2011년에  PRT(The Prince’s Regeneration Trust)1889년부터 이전하였던 미들포트 포터리( Middleport Pottery)를 구매하여 파트너쉽을 맺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는 펀딩을 조성하여 3년 안에 벌리공장을 다시 재건하는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당시에도 몰드를 모아 놓는 층에 너무 많은 몰드때문에 오래된 건물이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임시로 기둥을 세워 놓은 상태였습니다. 벌리에 가면 바로 앞마당에 병모양의 가마(Bottle Kiln)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 가마가 전통적으로 영국에서 많이 사용했던 가마입니다. 현재는 공장 안에 전기 가마가 있지만, 공장 안에는 예전에 사용하던 발전기도 볼 수 있습니다.  





 



[1] Birks, S., Timeline of Stoke-on-Trent, The Potteries, Visited 06 August 2014, http://thepotteries.org/timeline/index.htm

[2] 동판에 잉크를 입힐 때 기름과 함께 섞기 때문에 잘 흐르게 하려고 동판을 뜨겁게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방법을 Hot Press Printing이라 합니다.

[3] 전통적으로 영국 공장에서 이러한 전사를 붙이는 사람들은 여자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도자기 공장에서 일했을 때는 6~10살 여자아이들이 종일 서서 그릇에 전사지를 입히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사람들을 transferrer’ 라고 불렀습니다. 혹은 그림을 칼로 자르는 일을 하는 여자아이를 cutter 라고 불렀습니다.

[4] 1751 전사지는 브룩스 (John Brooks) 처음 전사지에 관한 저작권을 내고 5 가이스 그린 (Guys Green), 새들러(John Sadler) 의해 처음 성공하였습니다. 그들은 새들러 그린( Sadler and Green)이라는 회사를 세우고 타일에 그림을 장식했습니다. 당시에 공장은 1,200개가 넘는 타일을 이러한 동판 인쇄 전사지 방법을 이용해서 100명의 사람이 6시간  안에 제작하였다고 합니다.

[5] Origins of Blue Printing on Earthenware, Spode Exhibition Online, Visited 05 August 2014, <http://spodeceramics.com/industry/origins-blue-printing-earthenw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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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unaekim.com


이 글은 월간도예 2014년 10월 호에 실린 작가 선애킴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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