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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TISH CERAMICS/유럽 도자기 공장 & 박물관

로열 덜튼 + 피겨린

로열 덜튼 + 피겨린

Royal Doulton and Figurines

 

신데렐라, 백설공주같이 디즈니 만화에 치마 폭이 풍만한 공주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들. 화려한 색깔로 장식된 구두. 미국에 바비 인형이 있다면 한 세기 전  영국인들은 로열덜튼(Royal Doulton) 공장에서 만들어진 도자기 인형에 열광했습니다. 흔히 피겨린(Figurine)이라고 불리는 도자기 인형입니다. [1]

 

로열 덜튼(Royal Doulton) 도자기 공장의 스토리는 올해로부터 200년 전인 18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풀햄 공장 (Fulham Manufacturing Co.) 에서 도공으로 일하고 있던 존 덜튼 (John Doulton)은 불과 22살의 나이에 도자기 무역을 배운 후 자신이 모은 전 재산 100파운드를 가지고 작은 도자기 회사를 차렸습니다.[2] 마사 존스(Martha Jones)와 존 와츠(John Watts) 두 파트너들과 함께 런던을 가로 지르는 템즈강  둑 주변에 있는 와츠 앤 덜튼  포터리( Watt & Doulton pottery)가 이로서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당시 영국에 유행하던 스톤웨어 병, 쨈 병 등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20세기 초반 핸리 덜튼(Henry Doulton)이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회사가 많은 발전을 하게 됩니다. 이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보이는 로열 덜튼의 위생 도자기들, 워터 필터 등 세계 최초로 소금유약 스톤웨어 파이프를 생산하기도 하였습니다.

 



로열 덜튼 예전 공장, 스톡온트렌트, 사진 김선애 



 로열 덜튼 옛 공장의 문, 스톡온트렌트, 사진 김선애 



지금은 문을 닫은 로열 덜튼 상점, 스톡온트렌트, 사진 김선애 



창살 사이로 보이는  예전 로열 덜튼 공장, 스톡온트렌트, 사진 김선애

 


유럽 피겨린의 전통과 컬렉터블 피겨린

영국인들의 도자기 수집 (Collect) 문화는 역사적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해왔습니다. 지금까지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퍼그 독 (pug dog) 피겨린은 사실 독일 마이센 (Meissen) 공장의 작품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럽 왕실에서 사랑받던 퍼그 독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 (Queen Victoria)의 가장 사랑하는 애완견이 되면서 19세기에 영국에서도 피겨린으로 많이 만들어졌고 지금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영국에서 만들어진 피겨린은 18세기 마이센 포셀린 피겨린을 따라 한 사례가 많습니다. 포셀린 생산과 기술에 한 발짝 뒤처져 있던 영국은 피겨린뿐만아니라 그릇도 독일 드레스덴 지방에서 수입해 그 모습을 본따 만들었습니다. 한 예로 1751년 첼시 포셀린 공장 (Chelsea Porcelain Factory)의 디렉터였던 니콜라스 스피리몬트(Nicholas Sprimont)의 서포터 에버라드 경 (Sir Everard Fawkener) 은 독일 드레스덴 왕궁의 영국 특사에게 마이센 공장의 포셀린 작품과 가격을 요청하는 특별요청 편지를 썼습니다.[3]


마이센에서 만들어진 퍼그독 피겨린, 독일 마이센 뮤지엄 소장, 사진 김선애 

 

마이센에서 만들어진 피겨린을 따라한 스태포드 셔에서 제작된 피겨린

 

상류층을 위한 백자의 도자기 피겨린이 계속 유행하던 가운데  19세기에 들어서면 영국 서민들도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도기 흙(earthenware)로 만든 스태포드셔 피겨(Staffordshire Figure)로 불리워지는 도자기 인형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사진과 같은 로우테크(low-tec)로 만들어진 작은 도자기 피겨린입니다. 섬세하지는 않지만, 영국인의 자연스러운 삶을 보여주고 풍자와 해학이 담겨있는 피겨린입니다.



Figure, V&A 컬렉션, 사진 김선애

 

로열 덜튼의 컬렉터블 피겨린은 같은 지방에서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지만 조금은 그 성격이 다릅니다. 로열 덜튼의 피겨린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시기는 1877년 핸리 덜튼이 스톡온트렌트 지방의 버르살람 (Burslem)지역 파인더, 본 앤 코 회사 (Pinder, Bourne and Co.)의 주식을 매입하고부터 입니다. 19세기 후반은 피겨린 생산(Figurine-making)의 르네상스라고 불릴 정도로 피겨린 생산에 박차를 가했는데 영국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의 국제 박람회였던 1851년 런던 크리스탈 팰리스 만국박람회 (The Great Exhibition)를 계기로 미국에서도 그 수요가 높았습니다.

 

지금도 앤티크 시장에서 많이 보이는  로열 덜튼의 HN 시리즈 피겨린은 당시 페인팅 감독이였던 Harry Nixon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1913년에 피겨린에 넘버링 시스템을 도입해 컬렉터들이 쉽게 확인하게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HN 5000가 넘게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역사가 깊어서 피겨린에 표현된 옷이나 색상 등으로 당시 유행했던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Faraway, V&A(Victoria and Albert Museum)에 전시 중인 Doulton & Co. 의 피겨린 작품, 1958, 모델러 Peggy Davies, 사진 김선애

 

Sweet Sixteen, V&A에 전시 중인 Doulton & Co. 의 피겨린 작품, 1958, 모델러 Peggy Davies, 사진 김선애

 

그동안 월간도예를 통해 언급했던 도자기 피겨린의 발생( 2014 ..월호 참고)을 보면 피겨린은 원래 테이블 세팅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18세기 이후에는 장식적인 목적이 강했습니다. 원래 피겨린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선물로 주고 받는 일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1713~14 년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친척인 조피(Sophia of the Palatinate, Sophia of Hanover 1630 – 1714)에게 포셀린을 선물했습니다. 여기서 도자기는 단순한 선물이 아닌 유럽 왕실 외교를 위해 처음으로 도자기를 사용했다는 사실에 그 중요성이  있습니다. 나중에 조피는 영국 왕 조지 1세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투스가 폴란드 왕좌를 얻기 위해서는 카톨릭으로 개종해야 했는데 이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와 정치적 압력에 시달렸습니다. 조피가 프로테스탄트 기독교와 가톨릭을 모두 가지고 있는 지배층 가족에서 왔기 때문에 아우구스투스 자신의 권력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 도자기 선물을 한 것입니다. 그 자신이 열정적인 포셀린 수집가이자 감정가였기때문에 도자기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로의 선물은 확실히 그 효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 이후에 명성을 많이 얻은 마이센의 피겨린이 정치적 외교로 많이 사용되는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4]

 

앞의 예처럼 일부러 정치적인 목적으로 커미션을 주어서 제작하지는 않았지만 로열덜튼의 HN 시리즈로 대변되는  프리티 레이디스(Pretty Ladies)는 다양한 디자인으로 소장가치가 높은 컬렉터블 피겨린의 의미를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19세기, 20세기에 제작된 프리티 레이디 피겨린과 비교해 물론 지금은 디자인이 바뀌고 스타일도 현대화되었지만 아직도 로열 덜튼 피겨린만의 정체성이 뚜렷한 요소들을  피겨린 안에서 많이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로열 덜튼 브랜드의 지금

많은 스톡--트렌트의 도자기 공장들도 그러했듯이 로열 덜튼 공장 또한  2004년 원가 절감을 위해 생산설비를 인도네시아로 옮기고 피겨린도 그곳에서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웨지우드가 로열덜튼을 인수해서 지금은 로열덜튼 안에 로열 알버트(Royal Albert), 민턴(Minton) 라인이 주요 브랜드로 그 명성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5]

 


로열덜튼 공장 아울렛 전경. 로열 앨버트 라인이 진열된 것이 보인다. 사진 김선애

 

로열 덜튼 공장은 이제 문을 닫았지만 그 브랜드는  올해 200주년을 기념하는 뜻에서 디자이너, 아티스트와 콜라보레이션 작품 생산을 진행하였습니다. 텍스타일과 자수 홈웨어 디자이너로 유명한 찰린 먼렌(Charlene Mullen), 퓨어 이블 갤러리(Pure Evil Gallery) 오너이자 아티스트인 퓨어 이블(Pure Evil, Charley Uzzel Edwards) 의 작품을 판매 중입니다.  

또한 몇 년 전부터는 영국의 유명한 쉐프 고든 램지(Gordon Ramsay), 디자이너 서 테렌스 콘란 (Sir Terence Conran)  유명 디자이너, 레스토랑 오너들과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테이블, 키친웨어를 론칭했습니다. 또한 최근 회사의 창립 연도인 1815년 시리즈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사진 8. 공장에서 로열 덜튼 테이블 웨어를 제작 중인 도공. 사진 김선애

 



[1] 피겨린은 도자기로 만든 작은 사이즈의 인형으로 사람, ,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처음으로 누가 피겨린이라는 단어를 썼는지 문헌적으로는 불분명하지만 18세기때 유럽에서 유행하던 도자기 인형을 지칭합니다.

[2] The Doulton History, Royal Doulton Antiques, visited 3 May 2015, htp://www.royaldoultonantiques.com/historyroyaldoulton1.htm

[3] W.B. Honey, Dresden China: 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Meissen Porcelain, London: Faber and Faber, 1954, p.78.

 

[4] Marcus Köhler, Porcelain and Diplomacy at the Courts of Hanover and Cologna, in: Fragile Diplomacy, hg. Maureen Cassidy-Geiger, London 2007, S. 195-208.

 

[5]  로열 알버트는 토마스 와일드 시니어(Thomas Wild Senior) 아들 토마스 와일드(Thomas C. Wild) 함께 스톡앤트렌트 롱턴에 있는 알버트 웍스(Albert Works) 만들면서 생겨났습니다. 민턴(Minton) 1798 토머스(Thomas Minton)  세운도기 도자기 공장이었으나 점차 포셀린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1824 이후 로코코 운동과 프랑스 포셀린으로 부터 영감을 받은 새로운 라인과 형태를 디자인 함으로 점차 명성을 쌓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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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도예에 실린  2015년 6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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