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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TISH CERAMICS/영국에서 도예가로 살아가기

도자기 피겨린으로 바라본 18세기 영국 삶과 문화 1

도자기 피겨린으로 바라본 18세기 영국 삶과 문화 1


1.    피겨린의 시작: 연회장에서 정치적으로 사용된 도자기


2009 영국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이하 V&A) 세라믹 갤러리가 다시 개방 했을때 세라믹 피겨린의 세계가 저에게 문을 두드렸습니다. 전세계의 많은 도자기 소장품들이 유리 장식장에 틈조차 없이 가득 있고, 높이는 천장에 닿을 정도였습니다 그곳의 디스플레이가 어떤가를 떠나서 저에게는 마치 제가 시대에 가서 유럽사람들의 도자기를 향한 열정을 바라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에서는 많이 접하지 못했던 도자기 피겨린( Figurine) 대해 관심이 갔는데요. 이유는 단순히 장식품인 줄만 알았던  영국의 피겨린 들이, 부부싸움, 연애하고 바람피우는 장면, 당시 유명했던 범죄 장면, 사냥 주제가 다양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월간도예에서 개월간 영국의 피겨린에 대한 소개와 만들어진 시대 문화적 배경, 제조 공장, 디자인 자료 등에 관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V&A세라믹 갤러리 오픈 당시 사진, 사진 김선애)

보통 피겨(Figure)라는 단어를 피겨린(Figurine)보다는 앤틱 책에서 많이 다루고 있는데 기원은 라틴어 ‘Figura’에서 나온 이탈리아어’Figurina’에서 시작이 됩니다. [1] 피겨린의–ine 단어에 붙었을 작다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언제부터 피겨린이란 단어가 쓰여졌는지 기원이 문헌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를 미루어 일반적으로 피겨린이라고 하면, 18세기 유럽에서 꽃피운 작고, 도자기 몰드를 이용해 만들어진 사람, 동물, 신들의 (porcelain statuettes) 이야기합니다.

 

18세기 영국 피겨린의 주제들을 깊이 살펴보면, 연극 장면, 오페라 가수들, 유명한 연극배우, 그리스 로마 신화, 시누아즈리(Chinoiserie), 터키 문화, 취미생활이었던 사냥과 스포츠, 동물들, 연애 모습, 결혼, 4계절 등으로 다양합니다. 시대에는 도자기는 사치품의 종류로 철저하게 부유층의 미각(taste) 반영하고 그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예술이었습니다. [2]

 

영국의 도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마이센 공장 이야기를 빠뜨릴 수는 없는데요, 도자기 피겨린을 처음 만든 공장은 독일 드레스덴(Dresden) 지방의 마이센(Meissen) 공장입니다.

 

1.    피겨린의 시작: 연회장에서 정치적으로이용되기 위해 만들어진 독일 도자기

 

독일 마이센 공장은 피겨린을 디저트 코스 (Dessert Course) 궁전의 화려한 연회(Banquet)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자기 피겨린은 장식품이라는 공식은 18세기 이후에 넘어오면서 생긴 것입니다.마이센 박물관에는 지금도1737-43년도에 만들어진 스완 서비스 (Schwanenservice) 전시 하고 있습니다.


(스완 서비스, 마이센 박물관 소장품, 사진 김선애)


사진에 보면 피겨린은 화려한 테이블 웨어와 접목이 되어서 하나의서비스 명칭이 붙여졌습니다. 강건왕이라 불렸던 아우구스트 2  Augustus the Strong (Augustus II, Elector of Saxony and King of Poland, 1670-1733) 마이센 공장의 소유자 였는데, 왕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마이센은 유럽에서 처음으로 중국과 일본의 자기(Porcelain) 닮은 강질 자기( Hard-paste Porcelain) 발명하게 됩니다.[3] 강질 자기는 16세기부터 많은 수요가 있던 중국의 자기들을 본떠서 만들기를 실험한 결과 만들어진 자기로 높은 온도에서 소성할 있는 자기를 말합니다.[4] 도자기는 당시의 금과 같은 가격으로 거래되었기 때문에화이트 골드 (White Gold)’라고 불렸던 것을 고려해 발명은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후로 마이센은 피겨린을 강질 자기로 도자기 그릇들 뿐만 아니라 피겨린을 생산해 내기 시작했습니다. 피겨린은 사실 18세기 이전에도 테이블 웨어와 같이 연회를 위해 만들어 졌습니다. 하지만 이전에는 설탕이나 왁스로 만들어진 것이 도자기가 유럽 시장에 열풍을 몰고 오고 나서는 자기로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16세기 독일의 피겨린은 상업적으로 판매가 아니라 궁정에서 귀족들이 왕에게 혹은연줄 충성도를 표현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5] 그러던 것이 18세기에 와서는 장식의 의미로 발전되었지만 여전히 테이블을 위해서 많이 사용 되었습니다. 당시 연회장에 초대되었다고 하면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규모가 다이닝 이었을 텐데, 피겨린은 여기에 초대된 사람들이 서로 어색하지 않게 하기 위한 하나의대화를 이끌어 내는 도구 역할을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당시의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유럽에 아이템이었던 즉흥 연희극(Commedia dell'Arte) 주요 등장 인물들은 도자기 피겨린으로 유럽 전역의 도자기 공장에서 만들어져서 테이블에 놓였습니다. 코스가 바뀔 이러한 피겨린도 같이 바뀌는 코스의 일부분이었습니다.

 독일 마이센 공장의 즉흥연희극( Commedia dell'Arte)Harlequin and Columbine피겨린, c.1745, 마이센 박물관 소장품, 사진 김선애)

 

(영국 더비 포슬린 공장( Derby Porcelain Factory) 즉흥연희극( Commedia dell'Arte)Harlequin and Columbine피겨린, ca.1755-1760), V&A 소장품, 사진 V&A)

 

당시의 유럽의 문화는 국가에서 유행되면 다른 국가들로도 빠르게 전파되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당시의 가장 유행이었던마이센 도자기 스타일은 영국에서도 그대로 복제를 정도였습니다. 당시는 저작권법이 없었기 때문에 유럽공장들은 이러한 아이템들을 무단 복제해서 공장의 스타일로 조금씩 재해석하여 생산하였습니다. 사실 마이센 공장의 다양한 피겨린들의 주제는 1770년까지 영국 도자기 공장들에 의해 재해석이 되었는데, 당시의 수입 제한법(1775)들에도 불구하고 런던의 도자기 가게(London china shops) 에서 판매되기도 하는 영국 전역으로 퍼지게 됩니다. [6] 한마디로 독일에서 부는 도자기 바람이 영국에까지 깊게 들어 것입니다. 영국의 상업에 눈을 공장들이 이러한 것을 그냥 넘길 이유가 없습니다. 바로 도자기 피겨린 열풍을 자국의 시장에 가지고 옵니다. 유럽의 국가마다 기원과 역사가 다른 피겨린은 특별히 영국에서는 부유한 고객들을 대상으로판매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7] 독일의 마이센 공장은 왕실의 소유이기도 하고 적극적인 후원을 받고 있던 것에 비하면 영국의 도자기 공장들은 이윤을 추구하는 도자기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웨지우드(Wedgwood)에서는 부유층의 부인들을 일부러 런던의 전시실(Show Room) 초청을 하여 친구들과 작품을 보면서 후에 경제권을 가지고 있는 남편에게 사도록 기대하였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이러한 귀족이나 개인 고객을 위한 문장 표식등을 도자기에 새겨주는 일도 하였습니다.[8] 다른 유명한 이야기로는 웨지우드(Wedgwood) 크림웨어(creamware) 유명한 도기(earthenware)그릇들을 맘대로퀸즈 웨어(Queen’s Ware)’ 라고 명명하고 여왕께 헌사를 합니다. 그래서 유명해진 퀸즈 웨어는 부유층에게 불같이 팔려 나갑니다.[9]


 (18세기  퀸즈 웨어 일부분, 웨지우드 박물관 소장, 사진 김선애)

 

첼시 포슬린 공장( Chelsea Porcelain Factory)에서 1765년에  만들어진음악 수업( The Music Lesson)’이란 작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현재 V&A 소장인 작품은 다른 피겨린 보다 크기가 크고 화려합니다. 작품은 프랑스 극장과 귀족들의 취미를 담은 다큐멘터리식의 도자기가 영국 전통을 만난 문화의 집약체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음 계속>

 



[1] Figure 2013, Oxford Online Dictionary, viewed 13 July 2013 <http://oxforddictionaries.com/definition/english/figurine?q=figurine>

[2]시누아즈리(Chinoiserie)는 서양에서 중국과 일본의 아시아 풍의 표현에 원천을 둔 예술 표현 방법의 하나로 18세기 부유층을 위한 장식미술에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3] W.B. Honey, ‘Dresden China: 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Meissen Porcelain’, (London: Faber and Faber, 1954), p.19

[4] 강질 자기에 비해 연질 자기( Soft-paste Porcelain)는 약 1200도에서 자화가 덜 된 자기를 이르며 유럽 최초의 연질 자기는 1575-1587년도에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아 만들어진 메디치 포슬린(Medici Porcealin) 입니다.

[5]

[6] 1730년대 후반 부터 1740년도까지 마이센의 모델러로 활동했던 요한 요하임 켄들러(Johann Joachim Kändler)는 즉흥 연희극(Commedia dell’Arte)에 기본을 둔 많은 도자기 피겨린을 만들었습니다. 이 즉흥연희극은 외설적인 유머가 특징이며 즉흥적으로 기지를 발휘해 우스꽝 스러운 연극을 하는 것입니다.

[7] Victoria and Albert Museum 2013, Figure,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Viewed 30 May 2013, <http://collections.vam.ac.uk/item/O71000/figure-willems-joseph/>

[8] Wedgwood Museum, 2014, Marketing and Commercialisation, Wedgwood Museum, viewed 28 July 2013,

<http://www.wedgwoodmuseum.org.uk/learning/discovery-packs/pack/lives-of-the-wedgwoods/chapter/marketing-and-commercialisation >

 

[9] 크림웨어 혹은 펄 웨어( Pearl Ware)로 불리는 퀸즈웨어( Queen’s Ware) 1750년대 제작이 되어서 1840년대 까지 영국 전역에서 유행을 한 웨지우드의 domestic ware입니다. 웨지우드가 여왕 샬롯(Queen Charlotte Mecklenburg- Strelitz)에게 1765년에 선사합니다. 12개의 커피 컵, 6개의 과일 바구니, 스탠드, 6개의 멜론 보관 항아리, 6개 촛대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The Wedgwood Museum 2014, Queen’s Ware, Viewed 11 March 2014, <http://www.wedgwoodmuseum.org.uk/learning/discovery_packs/pack/lives-of-the-wedgwoods/chapter/queens-ware>



www.sunaekim.com


사랑해 주시는 분들 늘 감사합니다.


월간도예 2014년 4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연구하는데 혼심의 힘을 쏟았으므로 마구 퍼가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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